우리의 치킨 스프
우리의 치킨 스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9.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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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 관광계열 교수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무더위가 가고 가을이 왔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코스모스까지 보니 가을이 실감난다. 그러나 일교차가 너무 심해 요즘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부쩍 많다.

보통 감기가 심하면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아 치료하지만 감기가 심하여 입맛을 잃었을 때 우리는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된다. 가령, 얼큰한 콩나물국이나 시래깃국 혹은 삼계탕이나 심지어 떡볶이 정도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어려서부터 엄마가 만들어주어서 우리 입맛에 매우 익숙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음식을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라고 한다.  comfort는 우리말로 ‘위안’이란 의미이며, 컴포트 푸드는 개인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당시의 동일한 향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고 기쁨과 안도감을 주는 매개체가 된다. 컴포트 푸드에는 ‘nostalgic foods(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 그리고 ‘homemade foods (집에서 만든 음식)’의 의미가 포함된다.

나라와 지역별로 다양한 컴포트 푸드가 있겠지만, 나라마다 공통적인 컴포트 푸드가 치킨 스프이다. 치킨 스프는 닭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특색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나라별로 독특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닭을 오래 끓인다는 면에서 우리나라 삼계탕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닭에 인삼, 찹쌀, 대추, 마늘 등을 넣고 오래 끓이지만, 미국에서는 닭 육수에 파스타, 샐러리, 허브, 당근, 양파 등을 넣어 오래 끓인다. 삼계탕에서는 인삼의 향이, 치킨 스프에서는 샐러리의 향이 강하여 그 맛이 오래 기억된다는 생각이 든다. 불가리아의 치킨 스프에는 레몬주스나 식초를 넣는다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닭육수에 거품낸 계란과 레몬을 섞고 쌀이나 파스타 등의 곡류를 넣어 오래 끓여 감기증세나 배 아플 때, 해장할 때 먹는다고 한다. 프랑스 음식 중 닭육수에 백리향, 화이트 와인, 마늘을 오래 끓인 치킨 스프가 있다. 

몇 년 전 미국 유학시절 심한 독감에 걸려 고열과 몸살로 무척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독감에 걸려 노약자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고, 나 역시 너무 아파 학교에도 못가고 혼자 고생하고 있었다. 그 때 미국인 친구가 몸보신하라고 끓여준 음식이 바로 치킨 스프(chicken soup)였다. 샐러리가 들어가 맛이 참 생소했지만 미국인들이 아플 때 민간요법처럼 먹는 음식이라고 하기에 감사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인 친구가 치킨 스프를 꼭 먹어야 한다고 나에게 강조하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몸이 아플 때마다 엄마가 끓여주었던 치킨 스프를 어른이 되어서도 감기증세가 있을 때 습관적으로 먹으면서 신체적인 영양과 더불어 심리적인 위안도 받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치킨 스프의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기반으로 ‘잭 캔필드’가 쓴 ‘Chicken soup for the soul(영혼을 울리는 닭고기 스프)’라는 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치킨 스프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책의 제목이 주는 의미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몸이 아플 때 어려서부터 먹으며 몸과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치킨 스프이므로, 이 책을 읽으면 치킨 스프처럼 우리의 영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제목에 담겨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려운 환경과 역경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의 힘을 입어 이겨내고 열심히 살게 되었다는 많은 감동의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그 책을 읽다보면 감동의 눈물과 함께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까지 생긴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몸이 움츠러들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추억의 음식들이 생각난다. 특히 어려서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었던 음식이 더욱 그렇다. 지금 여러분의 치킨 스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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