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바라보며
가을을 바라보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0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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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점/시인ㆍ경남간호사회 부회장
가을은 느닷없이 쳐 들어온다. 마치 한순간에 우리가 늙어가는 것처럼. 언제 여름이었나 싶을 만큼 아침은 추워지고 나뭇잎들은 그들의 추억을 하나씩 버린다.

충만한 가슴으로 길을 나선다. 행복으로 가득한 자연을 바라보는 일 또한 얼마나 즐거운가? 길 떠나는 초입에서 무덤덤한 일상을 훌쩍 벗어던진다. 그래 이것은 삶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진료실에서 구불텅구불텅 흘러가며 진득하게 감겨오던 시간들을 벗어버린다.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진입해 온다. 갑자기 폐활량이 평소의 갑절로 커진다. 그래 이 신선한 산소는 내 전신을 돌고 돌아 콕콕 쑤시던 어깨며 무릎 관절을 매끄럽게 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충전된 나를 데리고 꽃들이 피는 내력을 더듬어보고, 질펀하게 열리는 사과거나 단감의 향내도 흠흠 맡는다.

이제 막 겉옷을 벗으며 대지의 겨울을 걱정하는 플라타너스에게, 가을산의 허전함을 위로하는 산국에게, 또는 절정으로 타오르는 개옻나무에게도 세상의 안부를 전한다. 모든 것은 다 제 갈 길로 흘러갈 것이라고, 우리들의 안쪽은 반드시 따뜻해 질 거라고 함께 손잡고 걸어가자 말 전하리라.

혼자 가는 길이라도 가을에는 외롭지 않겠다.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말 걸어줄 것 같은 설렘이 이 계절에는 있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또 좀 어떤가! 걷고 또 걸으면서 골똘히 사색하기에 좋은 계절 또한 가을일 터!

나는 어릴 적부터 가을이 무척 좋았다. 가을걷이 끝낸 들판의 시원함도 좋았지만, 미루나무 잎이 수북이 쌓인 마당에서 패차기를 하며 아버지가 외출에서 돌아오실 시간을 헤아려보는 것과 일꾼 아저씨가 쓸어둔 빗자루 무늬 촘촘한 마당의 흙내음이 좋았다. 텃밭에는 무가 쑥숙 자라고 처마 밑에 가득한 가마니들은 통통한 배를 내밀며 우리들의 따뜻한 겨울을 약속했다. 겨울은 아직 멀리 있었지만 내게 있어 그것은 기적소리처럼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이렇듯 내가 건너오고 건너가는 이 계절은 언제나 따뜻하고 풍성하다.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 생각나는 이들에게 몇 줄의 메일이라도 쓰고 싶다. 한동안 소식 없는 지인에게 문득, 밤하늘에 홀로 떠있는 샛별처럼 ‘박 선생 잘 계신가요?', 이런 안부를 놓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내 정수리를 환히 비춰주는 달빛과 맨발로 슬그머니 창문을 넘어와 전신을 휘감고 드는 은목서 향기를 한정 없이 사랑하고 싶은 그런 나날이다. 그야말로 온 몸으로 안아보고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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