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라는 괴물
자본이라는 괴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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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나는 집이 서울인 관계로 여의도 한강공원을 자주 찾는다. 이 공원에 최근 ‘괴물’ 조형물이 하나 생겼다. 아마도 한강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영화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리라.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취향이 아니라 이 혐오스런 조형물을 지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고는 한다. 비싼 돈을 들여 만들었을 텐데, 차라리 배용준과 최지우, 혹은 김수현과 전지현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백배천배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담당 공무원의 생각이 다르다면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괴물의 흉측함을 더 이상 흉측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 아니 어쩌면 저런 괴물을 미의 일종, 선의 일종, 가치의 일종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해괴한 미학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한번쯤은 흑은 흑, 백은 백, 좋은 것은 좋고 나쁜 것은 나쁘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되돌아가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떤 교묘한 정신적 최면에서도 자유롭게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저것은 흉측한 괴물!’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63빌딩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에는 엄청난 자동차들의 질주가 눈에 들어온다. 도대체 저 움직임의 근저에 가로놓인 힘은 무엇일까. 그게 그저 단순한 가솔린의 힘 만일까. 아니다. 철학자의 눈으로 보면 저것을 움직이는 힘은 ‘자본’이다. 저 움직임은 대부분 ‘돈을 향한 움직임’이다. 누가 그것을 아니라 할 수 있는가. 자본이 저 도로를 장악하고 있다. 아니 어디 저 도로 뿐인가. 온 세상이 어느 틈엔가 자본의 점령지가 되고 말았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바야흐로 돈이다. 그것은 어쩌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일으키는 저 우주적인 힘보다도 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해 그 누구도 그 힘에 대해 거역할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자본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괴물이다.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최근에 나는 이 괴물이 소위 ‘인문학’을 물어뜯고 있는 참사를 목격하고 있다.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취업률이 낮다는, 즉 돈을 벌지 못한다는, 다시 말해 자본에게 무익하다는 죄로 굻어 앉혀져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몇몇 대학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학과들이 폐과라는 형태로 저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와중에 일부 인문학자들은 이른바 연구과제라는 형태로 돈을 받으며 저 괴물의 품에 들어가 희희낙락하기도 한다.

자본이라는 것이 모든 가치들을 지배하는 용상에 올라가 있다. 모든 가치들이 그의 발밑에서 숨을 죽인 채 머리를 조아린다.

인문학은 과연 그토록 쓸모없는 것인가. 우리는 잠시 그 과거와 미래를 생각해보자. 인문학이 제대로 살아 있었던 과거와 인문학이 죽어 없어진 미래를.

이른바 IT 이전의 세계가 불과 얼마 전이었던 것처럼 인문학이 건강하게 살아 있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상대적으로 빈궁했지만 정신은 나름 풍요로웠다. 웬만한 사람들은 서정주와 김수영을 입에 올리며 먼먼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았고, 바람에 눕는 풀과도 대화를 나누었고, 또 단군에서 815, 625까지 2천 수백년의 시간이 굽이굽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도 꿰뚫고 있었다. 어떤 젊은이들은 하이데거를 운운하며 존재와 시간을 한 눈에 담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포퍼나 프랑크푸르트의 학자들을 앞세우며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제법 멀리 그리고 넓게 그리고 높은 곳을 올려다봤다. 그 눈에는 온갖 아름다운 풍경들이 비치곤 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아직 따뜻함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그런 인문학이 대학을 떠나고 서점을 떠나면 어떤 세상이 기다릴까. 이른바 위대한 근대를 건설한 저 과학은 기술, 산업과 손을 맞잡고 맹렬한 속도로 자본의 제국을 세상 끝까지 건설해 나갈 것이다. 그것은 한강변의 저 괴물보다도 더 맹렬한 속도로 질주 혹은 폭주를 해나갈 것이다. 이정표나 등대 혹은 브레이크나 고삐 역할 해줄 인문학도 그때는 이미 없다. 인간은 그리고 세상은 그때 도대체 어디로 향할 것인가.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삶이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종말은 누구에게나 언젠가 현실이 된다. 인간과 세계는 사정이 다를까. 파멸이라는 것은 한갓 단어에 불과한 것일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 공룡이나 매머드에게, 혹은 삼엽충이나 암모나이트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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