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라니!
사재라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09 1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국내 재벌 아무개씨께서 사재 5000억을 사회에 내놨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재’라는 말을 잘못 사용되고 있다. 말이 잘 못 사용되면 생각이 이미 잘 못되었다는 걸 증명하는 데도 그냥 넘어간다. 자꾸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것이 지극히 정상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재벌들의 사재가 의아했고 지금쯤은 경악스럽다. 오래 전에 나는 철이 없어 세상물정을 몰랐다. 세상물정을 어느 정도 알고 나서도 그냥 그럴 수도 있겠거니, 다 그런 거지 뭐, 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그냥저냥 속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속아갈 수가 없다. 세상은 성실한 나를 지나치도록 단련했다.
몇 천억을 선의로 툭툭 던지는 그들도 나와 똑같은 개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많은 돈을 사유할 수 있었을까. 이번에 5000억을 내놓은 그이가 나보다 나이가 좀 많아 돈을 벌 기회가 더 많았다고 해도 그렇다. 도저히 계산이 안 된다. 백 번 양보해서 그이는 많은 사람을 부리는 것으로 업을 삼고 나는 각종 알바로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는 것으로 업을 삼아서 그렇다고 해보자. 난 결코 고달프고 곤궁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게으름을 피워보지도 않았다. 매사에 성실히 살 수 있어서 늘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진짜로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도 내 재산은 총 2억을 넘지 못한다. 그것도 부동산을 빼고 나면 현금은 그이가 내놓은 돈의 끝에 붙은 ‘1000억’이라는 단위를 확 뺀 돈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그건 남편 몫이 대부분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내 나이 쉰둘. 내가 평생 모은 돈을 그이는 한 달에 다 벌어 모았다해도 이상하고, 하루에 벌어모았다해도 이상하다. 한 사람이 성실히 일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걸 자꾸 그이의 ‘사재’라고 우기니 경악할밖에! 거기다가 그이가 많은 사람을 부려서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에 직접 관계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이가 가진 돈이, 합당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의 재산을 조금 능가하는 정도가 딱 맞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가. 합당한 대접은 고사하고 여자와 남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자와 비해고자, 현장직과 사무직, 노조원과 비노조원, 하청직과 본사직, 순종자와 비순종자, 온갖 말로 부리는 사람들을 찢어놓고 이간질 시켜서 힘을 이중 삼중으로 쪽 빼고 있다. 꼭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직접 하지 않거나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 쪽에만 자꾸 돈이 몰리니 이상하다는 거다. 저 옛날 중세. 수 많은 노예를 거느린 사람이 낮에는 노예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밤에는 연회를 여는 장면이 떠오를 뿐이다. 만딩고!

그이가 이렇게 말하며 종주먹을 들이댈 수도 있겠다.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대통령까지 된 사람도 있는데 뭘 그래? 그러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열심히 해봐! 기회는 균등하잖아?

제발 그렇게 말하지는 말자. 그렇게 말하는 건 절대 다수를 차지하면서 실제 생산을 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성실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떻게 기회가 균등한가. 우리 사회의 돈 90%를 차지해서 대를 이어 휘두르는 그이와 같은 사람이 있고, 남은 10%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절대다수가 있는 게 이 사회다.
또 한가지, 실은 그간에 그이가 돈을 내놓는 것과 비슷한 경우를 당해도 나에겐 그 흔한 라면 한 개도 안 돌아왔다. 그 엄청난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니 제발 우리한테 생색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돈이 그이 개인의 돈이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그건 적정하고 공평하게 제때 나눠갖지 못한 우리 돈이고 그인 그걸 가로채간 가짜주인이다. 애초의 우리 것을 가지고 사재니 선의니 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적정하고 공평한 나누기가 되도록 제도를 마련했으면 얼마나 좋아! 지금이라도 그런 제도 마련에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야겠고 이 일만이 내 인생이라는 걸 깊이 자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