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꿈꾸며
숲을 꿈꾸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16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오랜만에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을 다녀왔다. 56구역에 묻혀 있는 어릴 적 친구 G를 찾아보는 것이 한 가지 목적이었고, 자동차 소음 없는 널찍한 곳에서 산책을 즐기고 싶은 것이 또 한 가지 목적이었다. 차가운 비석이지만 어쨌든 친구의 흔적이 있어 좋았고 호젓한 그곳의 분위기가 걷기에도 좋았다. 주변에서 신선한 숲의 향기도 번져왔다.

군 생활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G와 나는 낙동강이 시작되는 A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꿈 많은 청춘시절에는 강둑에 앉아 이런저런 포부도 이야기하곤 했다. 그 중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G는 언젠가 A시의 시장이 되겠노라 했다. 시장이 된다면 특별한 역사와 전통, 아름다운 자연, 우수한 인재로 이름난 그곳을 세계적인 명소로 가꾸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구상들은 제법 구체적이기도 했다.

그의 그런 포부는 흘러가는 낙동강물의 반짝이는 윤슬처럼 함께 반짝였는데 원통하게도 그의 꿈은 어이없는 죽음과 함께 묻혀버렸다. 주변에서도 알아주는 우수한 인재였던지라 그것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일종의 상남자였던 그는 어쩌면 A시가 아니라 서울시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철학자의 자격으로, 그리고 친구의 자격으로 그 녀석을 움직여 40여년 전처럼 그 녀석과 더불어 이런저런 일들을 획책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 녀석을 쥐어박아서라도 꼭 실현시키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수도 서울을 ‘숲의 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숲의 도시는 젊은 G와 나의 이상향이기도 했다. 서울은 산과 강을 지닌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으나 살아보면 드넓은 시가지에 마땅히 산책할 곳이 없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참으로 아쉬운 것이 숲의 부재다. 시장의 지휘하에 공무원들의 우수한 두뇌를 가동한다면 ‘숲의 도시 서울’은 결코 요원한 꿈이 아니다.

시민들의 접근성이 뛰어난 한강변만 숲으로 잘 꾸며도 강남북의 수십수백만 시민이 훨씬 더 건강하고 질높은 생활을 즐길 수가 있다. 적절한 문화적 가게들과 결합한다면 외국 관광객을 유인하게 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여의도, 반포, 잠실, 광나루, 뚝섬, 용산, 난지 등 부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지친 도시인의 영혼을 보듬어줄 ‘나무’가 없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을 위한 아이디어가 없고 의식이 없는 것이다. 만일 시장이 된 G가 부족한 ‘예산’ 운운한다면 나는 아마 틀림없이 그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을 것이다. 돈이 없다면 시민들로부터 한 그루씩 기증을 받으면 될 일이다.

시장이 판만 벌여놓으면 한 그루 아니라 몇 그루라도 기증할 시민은 넘쳐날 것이다. 거기에 ‘누구누구 나무’라고 이름만 붙여주면 된다. 자기 나무에 수목장을 허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별로 테마 숲을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인기를 끌 것이 틀림없다. 이를테면 여의도는 벚나무숲, 반포는 은행나무숲, 잠실은 느티나무숲 ... 하는 식으로. 2, 30년만 지나도 아마 한강변의 공기가 달라질 것이다. 노들섬이나 선유도가 제대로 된 숲으로 변모한다면 거기에 미술관 혹은 조각공원 같은 것을 짓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10년 세월을 살았던 도쿄만 해도 거목들로 가득한 숲들이 시내 곳곳에 적지 않았다. 역시 한때 주민으로 지냈던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프라이부르크도 거대한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바로 얼마 전 한해를 살았던 미국의 보스턴에도 거목들은 그 도시의 불가결한 일부였고 그곳 풍경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찰스강변의 숲길이 없는 보스턴은 상상할 수도 없다.
서울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그 속에서의 삶도 이젠 세계의 기준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세계의 도시들이 어떻게 그 ‘질’을 확보하는지. 도시와 나무. 도시와 숲. 그것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결합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나무’라고 하는 사실을 나는 거듭 강조해왔다. 나무는 우리 인간들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위한 엄청난 축복이다. 나무를 너무너무 좋아하던, 그래서 함께 낙동강변의 숲길을 거닐며 나무 향기를 즐기던 40년 전의 젊은 G가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