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놀이(지신밟기)
풍물놀이(지신밟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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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진주 전문연회단체인 솟대쟁이패의 지도자였던 김성쇠(1885~?)는 진주농악의 상쇠 황일백에게 영향을 미친 스승이였으며 진주농악의 큰 스승이다. 김성쇠는 산청군 단성출신으로 영남을 돌면서 놀이 마당을 열었다. 선생의 쇠가락은 명인의 수준으로 전해지고 있고 예인들에 의하여 그 맥이 서부경남에 이어져 내려왔다.
지신밟기는 집이나 마을의 터를 안정시키는 주술적 의례로 행해졌는데 보통 집을 짓기 전에 집터를 다지는 지경다지기를 하는데 이때 지신밟기를 하고 고사를 지낸다. 왜냐하면 땅에는 부정한 일이 생기거나 잡신이 침범하기 쉽기 때문에 잡신을 쫓고 정화하기 위해 지신을 밟는 것이다.

정월달 지신밟기는 초삼일부터 시작하는데 마을의 서낭당이 있는 장소에서 주신풀이가 끝나면 마을로 들어와서 비교적 부유하게 사는 사람집을 차례로 들어가 지신을 밟아준다. 먼저 찾아간 집 대문 앞에서 “주인! 주인 문 여시오”하고는 풍물을 친다. 주인이 나와 풍물단을 맞아들인다.

일행은 그 집의 마당에서 놀이를 한바탕 놀고 이어서 대청 앞에서 대성지신풀이, 큰 방 앞에 성주풀이, 부엌에서는 조왕지신풀이, 우물 앞에서는 샘 지신풀이, 뒷간 앞에서는 뒷간지신풀이, 대문 안쪽에서는 대문지신풀이를 하고 마지막으로 주신풀이를 한다. 그리고 지신을 밟을 때는 “좋고 좋은 지신아 잡귀 잡신은 물알로 천행만복은 이집으로”라고 소리를 하면서 마당, 부엌, 광 앞을 밟으며 춤을 춘다. 이렇게 한바탕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면서 지신을 밟고 나면 집 주인은 음식과 함께 곡식, 돈을 내준다. 이렇게 하여 모아진 금품은 그 마을의 공동사업에 쓰도록 되어 있다. 악대의 편성과 구성은 ① 기수(農旗), 영기(令旗), ② 잡색(포수, 각시, 집사), ③ 태평소, ④ 쇠(꽹과리), ⑤ 징, ⑥ 북, ⑦ 장구, ⑧ 소고 등 기물들이다.

이렇게 볼 때 지신밟기는 새해초에 진경벽사(進慶僻邪)의 주술적 의미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면서 개인의 가택 안녕과 새해 풍년농사를 기원해 주고 시주를 모아 두었다가 마을에 일이 생기면 공공을 위하여 사용하는 협동정신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즐겁게 놀면서 복을 빌고 시주들어 온 금품을 모아 두었다가 마을에 일이 있을 때 사용하는 것은 우리 농촌 문화의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낸 장려할만한 마을 행사이다.

지금은 지신밟기가 민속놀이로 계승되고 있을 뿐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정초의 행사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전통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꽹과리를 두드릴 때 살아있는 것 같은 소리 마디마디에 호흡이 스며들어 있다.
주로 영남지방에서 행해는 지신밟기는 연중 무사하기를 비는 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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