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中國經濟)의 전개과정(Ⅱ)
중국경제(中國經濟)의 전개과정(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3.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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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지난번에 이어 중국경제의 전개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유교의 경제 이론은 소극적인 이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덕(德)을 근본으로 삼고, 재(財)를 지말(枝末)로 보는 유가들은 진리를 경제에 선행시켰고, 맹자는 항산(恒産)보다는 항심(恒心)을 강조했으며 공리(功利)를 철저히 배격했고, 순자 또한 외적인 모든 제도의 공능은 내적인 「군자」보다 못하다 했다.

묵가(墨家)의 경제이론은 유가를 답습하면서도 유가를 반대했다. 겸애(兼愛) 곧 실제의 효과를 강조하는 묵자학파들은 우선 낭비적인 휴가의 후상구장(厚喪久葬)을 반박했고, 동시에 사치는 백상의 재산을 수탈한다고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재산의 공동 균배를 주장하여 국민의 복리 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킴을 주장했고, 죽은 사람에게 세치[三寸]의 관을 쓰고 상복도 입지 말라고 철저히 절약을 주장하면서 각고(刻苦) 근면한 노동을 요구했다.

한편 이 같은 절약은 유가에게도 주장된 바 있으니, 곧 「생산은 빨리 소비는 느리게」란 관념이 농후했던 것이다.
법가(法家)는 국가사회를 기초로 한 만큼 부민과 법치를 공동목표로 삼았다. 법가의 비조인 관중(管仲)은 군중심리를 「이(利)」에 귀결시켰고, 국가정치를 경제에서 해결코자 했다. 여기서 국고의 충실을 요구했고, 생활상의 기본 조건인 의식(衣食)을 해결함은 국민의 인격을 향상함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그 실천 방법으로 저축을 통한 물가의 평준화와, 노동의 권장을 통한 생산 증가, 그리고 공업의 육성, 금융의 대여 등도 주장한 바 있었다.

관자의 뒤를 이어 상앙(商鞅)은 부강정책의 일환으로 5가구나 10가구가 한 조(組)가 되어 서로가 방범(防犯)케 하는 연좌제(連坐制)와 경작에 공적이 많은 사람에겐 부역을 면제하고, 군공(軍功)이 많은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경전장려책(耕戰獎勵策)과 정전제도를 폐기하고 토지 사유제도를 확립시키는 변법들로 국방과 민생 ․ 법치를 동시에 추진시켰다.
도가(道家)는 비록 전면적으로 자유방임적인 무정부주의를 주장했으나 더려 인재(人才)나 인력(人力)을 인정했고, 국민의 경제안정을 위해서는 정부가 과세를 낮추어야 하며, 통치자의 탐오(貪汚)와 축재는 백성의 재산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편 도가 중에는 양주(楊朱)와 같은 극단적인 이기주의(利己主義)자도 있어 유가나 법가 ․ 묵가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상에서 유가 ․ 묵가 ․ 법가들의 경제 이론을 대강 살폈다. 그러나 그 중 유 ․ 묵가들은 소극성과 모순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우선 공자가 이(利)는 소인이 아는 것이라고 경시했는가 하면, 맹자는 이를 쫓다가는 멸망한가고까지 경고했고, 묵자(墨子) 또한 민생에 이롭게 함을 종지(宗旨)로 삼으면서도 애매하게 부귀는 하늘의 뜻에 순응해야한다는 신앙적인 일면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상은 뒷날 중농억상이나 안빈낙도(安貧樂道) 사상을 고취시키면서 경제 발전을 저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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