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할아버지
약국 할아버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3.1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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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우리 동네 약국 할아버지는 마음씨 선하시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함께 약국을 경영하시는 할머니에 대한 평판도 좋다.

두 분 모두 국내 최고의 대학을 나오신 분인데다 남에게 해로운 소리 한번 안 하신다. 평생을 소박하고 선량하게 살아오셔서 그런지 얼굴만 뵈도 보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할머니와 금슬이 좋아 나는 자주 가서 뵈면서 마음으로 살피며 배운다.

내가 앞으로 늙어갈 모델로 손색이 없는 약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가까이 계셔서 참 고맙다.
요즘 약국 할아버지가 자주 입에 올리시는 말은 ‘화불단행’이라는 말이다. 불행은 절대로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옆에서 뵙기에도 할아버지는 최대 위기를 맞으신 것 같다. 우선 약국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하신다. “저어번 아이엠에프보다 몇 배 더해” 라고 하시며 그래도 허허 웃으신다. 그래도 약국이야 그렇지만 더 영세한 자영업자들을 걱정하시면서 우는 소리도 못하겠다 하신다. 이렇게 서민들이 고통스러운데 자꾸 재벌부자들만 격려하는 정책을 펴는 걸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신다.

할아버지는 진보나 보수라 해서 절대로 한쪽으로 치우치시는 분이 아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할아버지를 정의하자면 오히려 보수 쪽 사고에 더 가까운 분이다. 내가 슬그머니 권해서 한겨레 신문과 경향신문을 권해드렸더니 몇 달은 보시더니 역시 슬그머니 끊어셨다. 그러면서 내처 보시던 조. 중. 동은 그대로 내처 보신다. 아무 말씀도 없었지만 내심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조중동을 긍정으로, 한겨레와 경향을 부정적으로 보셔서 그런 것이라 짐작되니 은근 서운하기까지 했다. 이만하면 할아버지는 선량한 보수가 맞잖은가?
그런 할아버지까지 이 정권의 친재벌 정책을 못마땅해 한다. “입만 열면 갱제 갱제 하믄서 갱제의 갱자도 모르는 기지. 서민은 세금을 올리고 재벌은 세금을 깎고 이기 말이 되냐는 기지. 똑 같이 올려야 돼!! 그래야 서민은 2천원 올리고 2만원 혜택을 받게 되는 거지. 위에서부터 그 모양이니 사람들이 다 미처돌아가. 순리대로 선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본단 말이지. 약국들이 다들 간호사들에게 매월 상납을 해서 자기네 약국으로 오게 한대나 우짠대나...... 그 참!!”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화가 미쳤다. 척추협착으로 하반신 통증이 심해지신 것이다. 통증이 심할 때는 하반신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프시단다. 그렇다 보니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약국 불이 확하게 동네를 밝히고 새벽일 시작하는 노동자들을 맞이했는데 지금은 불꺼진 창이 되어버렸다. 이것만의 부족했던지 화는 또 다른 화를 불렀다. 할머니가 다치셨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졌던 것이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딸로 태어나셔서 세상물정을 모른다. 게다가 넘어져 어깨 뼈에 실금이 세 개나 났다. 기브스를 하셨는데 한 손으로 약국 일을 보신다. 할아버지처럼 새벽 다섯 시에 약국 문을 여는 일은 도저히 못하고 아침 아홉 시 경에 연다. 팔순인 할머니가 한 손으로 약국 일을 보니 얼마나 힘들고 불편할 것인가. 그래도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아픈 내색않고 약국을 지키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혼자 약국 일을 하시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하신다. 그래서 며칠 전 약국에 갔더니 급하게나마 치료를 받았더니 조금 차도가 있다면서 그저께부터 약국에 나오셨다. 병원에서 한 치료와 그 병원의 성공적 경영에 대해서 열띤 말씀을 곁들여 해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우리 동네에 큰 어른이 계셔서 다행이라는 평소 생각을 또 했다. 늙으나 젊으나 미쳐돌아가는 판에 본받을 수 있는 어른이 가까이에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할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진실로 경제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정부가 가장 먼저 진실된 정치를 폈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절대 다수인 서민들을 위해 경제를 살려갔으면 좋겠다. 기회만 있으면 재벌들과 만나 웃기만 하면 다가 아니다. 우리 서민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알 건 다 안다. 오죽하면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겠는가. 서민이 없으면 재벌은 무슨 재미겠으며 권력은 또 무슨 재미겠는가. 조금만 생각해도 이렇게 서민을 쥐어짜서 서민을 오그라들게 하는 것보다는 서민을 잘 살게 하는 해야 국가 기반이 튼튼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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