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한 언어생활을 위한 제언
풍족한 언어생활을 위한 제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1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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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갑석/시인ㆍ전 배영초등학교장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 중의 하나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일정한 약속에 의하여 만들어진 기호로 표시된 문자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자를 활용하여 풍족한 언어생활을 영위하면서 삶의 질을 높여나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의 날’이 있는지는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자기 나라 글의 창제자를 기리고 풍족한 언어생활을 다짐하는 ‘한글날’을 가진 우리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이다. 10월 9일 이날이 오면 어김없이 요란한 한글사랑의 구호가 난무하다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지만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불고 있는 한글 배우기의 열풍의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의 한글이 이제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되나보다 적이 안심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이 주인인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고 외부에서 불어온다는 소식은 서글프고 씁쓰레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얼굴을 들어 세계를 둘러보라.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만큼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예술적인 글자를 가진 나라가 있는가를 말이다. 상하좌우 어디로든지 자유자재로 배열하여 쓸 수 있고 곧게 쓰든 비틀어 쓰든 그 뜻은 한결 같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쉬이 배울 수 있으니 눈물이 나도록 고맙고 아름다운 글이다. 문자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이것을 예술적으로 발전시키고 생활화 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신문방송을 통하여 듣고 보면서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머지않은 날에 세계인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가장 위대한 인류의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 확언한다.

제언이라는 이름을 빌어 몇 가지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첫째로 어른들이 앞장서서 품위 있는 언어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서 또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써야 할 쉽고도 고운 말이 무궁무진하게 준비되어 있다. 친구지간에 막된 말을 함부로 쓰면서 이것이 오히려 친분관계를 상승시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조심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일이 품격 있는 언어문화생활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래어 외국어를 남발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둘째로 중·고등학생들의 언어생활이 너무 무례하고 거칠고 욕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욕설의 큰 특징은 신체적인 약점을 들춘다거나 성적인 야유 등이 대부분이지만 놀라운 것은 이러한 욕설이 거의 습관적으로 맹목적으로 때와 장소의 가림이 없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시내버스나 길거리에서 남녀구분 없이 쏟아내는 학생들의 욕설에 어안이 벙벙할 때가 참으로 많다. 요즘 청소년들은 너무 공격적이고 안하무인이어서 점잖게 충고라도 했다가는 되레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은지라 아예 귀를 막고 다니는 게 편하다.

평생을 교육사업에 몸바쳐온 사람으로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굴절된 우리의 현실이 언제나 바로잡힐까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한다. 이제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사회도 앞장을 선다니 기성세대들도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두 눈을 부릅뜨고 청소년들의 교화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로 ‘이런 말은 가급적 하지 맙시다’라고 간곡히 권하고 싶다. 흔히 쓰는 말 중에 ‘욕보다’라는 말의 뜻을 찾아보니 ‘곤란한 일을 겪거나 수고를 하다’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다’ ‘강간을 당하다’로 나와 있다. ‘욕보세요’ ‘욕봤다’하지 말고 ‘수고하세요’ ‘고생했다’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잘 얻어먹었다’는 말은 ‘잘 먹었다’ 또는 ‘대접 잘 받았다’가 좋으리라. ‘이래도 죽겠다 저래도 죽겠다’ 식으로 ‘죽겠다’라는 말을 너무 써서 자살률이 높은 것인가 맹랑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세계의 중심에 서려면 경제생활의 윤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교양 있는 언어로 ‘풍족한 언어생활을 누리는 국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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