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시 읽기
봄맞이 시 읽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3.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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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아직 바람이 거칠지만 봄은 봄이다. 하긴 봄이 바람없이 올 수는 없을 것이다. 바람이 봄을 실어오는 것이니. 산책을 하고 와서 나른한 몸을 뉘었다. 웬걸, 포근한 잠은 안 오고 잡념이 무성하다. 불쾌감을 못이기고 떨쳐 일어났다. 그래도 불쾌해서 원인이 뭔가 찾았더니 포만감이었다. 좀 빡센 산책 후의 시장기에 급하게 많이 먹었다. 게다가 남편이 얻어온 돌산갓김치가 맛있길래 마구 먹었더니 그 미련함에 몸이 자체짜증이 일었던 것이다. 청소년기부터 비롯된 포만감증후군이다. 그 시절 허리 24사이즈를 유지하려는 강박에서 비롯된 듯. 지금은 30사이즈?


불쾌감을 달래기 위해서 막걸리를 마셨더니 조금 나아졌다. 평소엔 딱 두 모금 마시는데 휴일이라 한 컵을 마셨더니 이번엔 하품이 나와 입이 찢어지네. 빌어먹을, 유쾌하게 살기 참 힘들다. 그래도 유쾌한 휴일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진 못한다. 포기하다니, 더 게걸스럽게 뭔가 건수를 찾아 눈알을 휘휘 돌려댔다. ㅋㅋ 두드려라 열릴 것이니. '소월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쌓인 걸 꼼꼼이 닦아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집을 열었다. 2백여 편의 시들이 나를 맞아주는 게 아닌가. 우와~~ 참 좋다. 막걸리를 한 잔 더 채우고 도토리묵을 데워 옆에 놓고 시를 읽는다.

‘기회’라는 제목 아래 시를 또 읽고 또 읽는다. ‘강 위에 다리는 놓였던 것을! / 나는 왜 건너가지 못했던가요. / <때>의 거친 물결은 볼 새도 없이 / 다리를 무너치고 흐릅니다려 /~~~~~ 먼저 건넌 당신이 어서 오라고 / 그만큼 부르실 때 왜 못 갔던가! / 당신과 나는 그만 이편 저편서, / 때때로 울며 바랄 뿐입니다려./ ’ ...

내 허리 24사이즈일 때 친하던 친구가 있는데 이제 서로 시집을 가서 몇 년 만에야 겨우겨우 친정이나 시댁으로 오가다 만난다. 그 친구가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2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십대가 새로이 되면 너무도 고운 사랑을 하고 싶다고. 나는 그 친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줄 알기 때문에 무척 마음이 아프다. 그 친구를 보면 소월의 시가 생각나고 소월의 시를 읽으면 그 친구가 생각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 소월도 내 친구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을 했던 모양이다.

친구는 지금도 말하곤 한다. 그 시절 사랑을 한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병을 앓은 모양이라고. 얼마나 아팠으면......... . 그 친구가 사랑의 병을 앓는 당시, 밤새 연인을 갈구하다 새벽이 되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 자췻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미치는 것과 정상의 경계를 보았다고. 그 경계를 넘어 딱 미쳐버리고 싶었는데 '엄마'가 불쌍해서 돌아왔다고. 이렇게 정신을 돌이켜서 나에게 달려왔다고. 차마 미치지 못해서 이렇게 달려왔다면서 울었다. 많이 울었다. 그 놈의 사랑이 뭔지.

친구의 엄마, 불쌍한 인생 맞다. 우리네 엄마가 다 그렇듯 가족 위해 남편 위해 고생만 하다 이제 병들어 계신다. 개망나니 같이 이녘을 괴롭히기만 하는 남편도 남편이라고 버리지도 못하고 살아온 우리네 엄마님들. 가슴이 아프다. 가을이 돼도 걷이할 논 한 골 없이 6남매를 키운 나의 엄마는 우리를 한 끼도 굶긴 적이 없다. 그렇다고 동냥질이나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다. 가끔 남의 밭에서 호박잎이나 깻잎 따위라면 슬쩍 따오는 건 두어 번 목격했다. 어떻게 6남매를 한 끼도 안 굶기고 키워냈는지 생각해보면 불가사의다.

나는 지금도 나물을 좋아하고 나물 요리도 곧잘 한다. 엄마가 해준 나물을 먹던 습관이 있고 어깨 너머로 배운 나물 요리 솜씨 때문이다. 문득 봄나물이 떠오른다. 냉이, 씀바귀, 돈냉이, 미나리, 쑥, 시금치, 도투라지, 씨앗똥, 홀잎나물....... . 같은 미나리 시금치도 봄에는 맛이 다르다. 어느새 우리 아이들도 나물을 좋아한다. 학교 급식 시간이면 나물을 잘 먹는다고 칭찬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 좋아진 건 확실하다. 우리네 엄마 시대엔 밥이 모자라서 나물을 해먹였는데 지금은 나물도 밥도 모자라기는커녕 남아돌아 낭패다.

시는 이래서 위대하다. 불쾌한 휴일을 유쾌한 휴일로 전환시켜 주다가 기어이 이렇게 인생의 깨달음까지 챙기게 해주다니. 밥도 나물도 남아도는 이 좋은 시절인데 엄마들보다는 좋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더 올바르고 더 인정이 넘치는 그런 좋은 인생을 살아서 고생만 진땅 하신 우리네 엄마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할 일이다. 그 고생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키워주셨으니 내 자식들 역시 더 사려깊고 올바르고 예의바르게 키워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겠다. 돈돈거리며 더 많이 갖겠다고 뱅뱅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자연과 사람과 시가 어우러지는 원래의 살만한 세상으로 되돌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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