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의 철학
날개의 철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6.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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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병풍처럼 둘러진 뒷산이 있다. 제법 높다. 이런 풍경은 아마 전국 최고가 아닐까 다들 자랑스러워한다. 가끔이지만 수업이 끝난 오후 시간에 혼자서 정상까지 올라가 보기도 한다. 오늘도 그곳에 다녀왔다. 정상의 ‘독수리 바위’에서 숨을 고르며 땀을 식히고 있었는데, 그 상공에 진짜 독수리 한 마리가 비행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선회하는 그 자태가 여간 늠름한 게 아니었다.

보고 있노라니 몇 년 전 거제도 망산에 올라 거기서 목격했던 까마귀의 비행이 떠올랐다. 까마귀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세상에! 까마귀가 그렇게 멋있는 새인 줄은 그때 처음 느꼈었다. 머릿속에 시 한편이 그려졌다.

신 오감도(新 烏瞰圖)
땀 뻘뻘 흘리며 고생고생/ 거제도 망산 정상에 올라 거친 숨을 고르는데/ 느닷없이 머리 위에 웬 까마귀/ 종횡무진 자유자재 가뿐한 날갯짓/ 동서남북을 희롱하며 비행쇼를 벌인다/ 한동안 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그래!)/ 너에게는 산도 산이 아니로구나/ 높고 낮음이 따로 없구나/ 내가 왜 까마귀를 우습게 보았던고/ 까마귀야 미안하다/ 나는 순간 새카매지며/ 존경스러운 그 까마귀가 되어 나를 내려다본다// 너는 누구냐, 거기/ 날개도 없이 창공을 탐하고 있는 딱한 너는….

누군가는 나더러 별나다고 흉을 볼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무엇을 보더라도 거기서 ‘의미’를 포착하려는 일종의 악습(?)이 있다. 그때도 그랬다. 아하, 저 까마귀에게는 날개가 있구나.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없는 저 날개…. 저것으로 저 친구는 창공을 주름잡고 있구나. 하늘을 나는 자에게는 날개가 있다는 저 단순한 진리. 비상과 비행에는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저 단순한 진리. 저 친구는 지금 그런 진리를 강(講)하고 있구나. 저게 있으면 종횡무진 자유자재 동서남북을 초월할 수 있구나. 그러면서 동서 남북 좌우 상하로 갈라져 그 틀에 갇힌 채 서로 반목하고 다투는 저 산 아래 세상의 모습이 안타까움 속에서 투영되었다. 오호라 까마귀만도 못한…. 하기야 난들 저 까마귀보다 나을 게 뭔가…. 그런 자성도 하게 되었다. 한 수 크게 배웠다.

더욱이 그 친구는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디 나뿐인가. 내가 그렇게 헐떡거리며 겨우겨우 올라온 그 산을 통째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산의 높고 낮음도 저 친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물며 인간들의 높고 낮음이 저 친구에게 무슨 대수랴! 좀 오버겠지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見山是山 見水是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불이 아니다…’(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어쩌고 하던 어느 선사(青原惟信禪師)의 경지가 저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날개가 부러웠다. 그러면서 날개를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날개’라는 소설을 썼던 작가 이상. 그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며 막막한 현실을 절규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만들었던 저 라이트 형제. 그들은 결국 하늘이라는 저 영토를 얻어냈다.

그리고 내 친구 SI.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를 같이 다녔던 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거의 새박사였다. 박제도 직접 만들었다. 그 친구는 미국에 가서 조류학을 공부한 뒤 진짜 새박사가 되었다. 귀국해 교수가 된 후 황새 복원으로 이름도 제법 날리게 됐다. 그런데… 그 정도로만 하지. 본인이 소위 시대의 유행인 ‘기러기’가 되더니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리를 해 결국 저 하늘로 가고 말았다. 남은 친구들은 그 친구를 기리며 기념 문집을 만들어 그의 영전에 바쳐주었다.  ‘하늘로 날아간 새’가 그 제목이었다.
그리고 저 장자. 그는 물고기로 태어난 ‘곤’(鯤)에게 날개를 달아 ‘붕’(鵬)으로 만들었다. 그 대붕을 통해서 그는 상상초월의 ‘거대세계’를, 탈속의 차원을 인간들에게 열어주었다. 인간세상의 온갖 ‘좁음’과 ‘낮음’이 그 대붕의 날개 그늘에 묻혀 초라해졌다.

그 밖에도 많다. 저 위대한 월트 디즈니도 미야자키 하야오도 가슴속에 달린 날개가 없이는 결코 피터팬이나 키키에게 하늘을 날게 해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때마침 지금 FM에서 흘러나오는 저 음악. (거짓말 같은 이 타이밍!) ‘노래의 날개 위에’(Auf Flügeln des Gesanges)다. 멘델스존이다. 저 날개는 천사의 날개만큼이나 아름답다.
나도 이제 잠시나마 저 노래의 날개 위에 마음을 싣고 이 미학적 세계의 하늘을 날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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