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것에 대하여
나이 드는 것에 대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7.1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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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가끔씩 사람이 그리워지고는 한다. 아마도 나이 탓일 게다. 외로워질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일선에서 은퇴하고 나면 나이라는 게 희망보다는 절망이 깊을 수 있는 나이이고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은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누구나 일생에 몇 번 정도는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필자도 10대의 한때는 막연하게 자살이라는 것을 순간순간씩 생각해 본 경험이 있었다. 염세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서적을 탐독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 경험이 있었다. 이 염세철학자의 “자살예찬론”을 읽고 자살을 한 젊은이가 상당 수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이 좀 들고 인생의 쓴맛 단맛을 좀 보았으니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관한 책을 읽어도 그렇게 감수성이 예민한 상태의 감각으로 그 철학자의 사상에 무조건 매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내 나름대로 삶에 대한 주관과 철학도 준비된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 그가 쓴 책을 읽어보았는데 선입감보다는 그의 철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자살에 관한 예찬 같은 것은 충동을 느낄 수 없었다. 제법 나이가 들고서야 비로소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치기(稚氣)로 넘치던 시절에는 그리움 같은 것이 없었다. 외로움과 슬픔 앞에서도 나는 오만(傲慢)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외로움이 깊을수록 삶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삶을 모르던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그 어리석은 오만에 그만 웃음이 난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삶을 무던히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의 진지했던 생각들이 치기로 다가서고 맹목적이던 열정들이 오만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면 나이 든다는 것은 결국 삶을 배워 가는 과정임을 깨달으면서 성숙하게 된다.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면 텃밭에 들러서 만사를 잊고 일에 심취하고 집에 오면 독서하고 글 쓰고 산책하고 또 가끔 취미로 즐기는 바둑을 한 판 두고 나서 기우(碁友)와 함께 소주 한잔 나누면 “나는 노년을 참 행복하게 보내고 있구나!”하고 자위하곤 하면서 외롭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뭐가 되었든지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일이 아니고 건전한 일이라면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정진(精進)하는 것이 나이 들어서 더욱더 필요한 생활태도라고 믿는다. 누군가와 외로움을 나눈다는 것은 안으로 닫혔던 가슴을 바깥으로 여는 일이다. 그것은 비로소 겸손해지는 것이고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의미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리움·외로움 그리고 슬픔과 같은 단어들은 존재의 약함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젊어서는 그런 말들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런 단어들은 젊음이라는 생명력 앞에서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런 말들은 마치 입고 있는 옷처럼 몸에 와 감긴다. 옷을 벗기까지 그 말들은 언제나 존재의 그림자가 되어 행동한다.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인정하게 되고 그리움을 그리움이라 말할 수 있을 때 만나는 삶은 그 의미가 깊다. 그것은 바로 성숙을 의미한다. 성숙해 간다는 것은 결국 약한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익혀 가는 것이다. 보잘 것 없고 남루한 모습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함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모습은 자꾸 왜소해져가도 마음은 한없이 커 가는 것이 나이 듦의 의미라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나이든 늙은이들을 만나보면 지나온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기도 하고… 다시 젊음이 되돌아 와 주었으면 하고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나이 들고 보니 나 보다 높은 사람, 돈 많은 사람한테 밥을 얻어먹는 것 보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밥 한 끼, 소주 한 잔 사 주는 것이 더 큰 즐거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요즘은 나 보다 못한 사람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서는 돈 많고 권력 높은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사람 냄새가 느껴지곤 한다.

흙에서는 흙냄새가 나고 풀에서는 풀 냄새가 나고 꽃에서는 꽃 냄새가 나는 법인데 사람 사는 세상에는 가끔씩 굶주린 이리떼가 득실거리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나는 그래서 그런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혼자서 산속을 자주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운 하모니인 새 소리를 들으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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