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의 철학
코의 철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7.2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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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주변의 한 아는 여성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뭔가 인상이 묘하게 달라진 느낌이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는데 들려오는 소문이 아무래도 성형수술을 한 모양이었다. 말로만 많이 들었지 주변에서 실제로 이런 사례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라 멀리서 좀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이런 것에 상대적으로 무심한 남자 입장에서는 늦은 나이에 뭘 그렇게까지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본인으로서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싶기도 했다.

하기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온 세상의 얼굴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파스칼의 저 유명한 말을 생각해보면 사람의 얼굴에서 코라는 것이 차지하는 의미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코는 얼굴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은 아무리 남자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코에 대해 무심하지만 예컨대 서양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무엇보다도 이 코가 좀 신경 쓰인다. 나만 하더라도 비교적 콧날이 오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지만 독일과 미국에서 살 때는 피부색이나 머리카락보다도 저들의 코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그냥 사람의 인상에만 기여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콧대가 높다느니 코가 납작해졌다는 등의 표현을 보면 코는 사람의 마음상태 내지 인격의 한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일본어 표현에서는 예컨대 뭔가가 자랑스러울 경우, “코가 높다()”고 말하기도 한다. 같은 표현이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의미라 좀 재미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같은 말처럼 코에는 이른바 용도도 있다. 실제로 코걸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일부 펑크족들 외에는) 거의 없지만, 예컨대 나처럼 안경을 끼는 사람들에게는 코의 존재가 필수불가결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 다 부차적이다. 생각해보면 코에도 그것의 본질은 따로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그 기본적인 본질은 숨쉬는 것이고 그 다음은 냄새맡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이목구비라고 해서 얼굴의 여러 요소들 중 코를 맨 나중에 거론한다. 알게 모르게 은근히 무시하는 것이다. ‘이비인후과에서는 그나마 인후보다 먼저 거론되지만 귀에게는 역시 뒤로 밀린다. 코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내가 젤 중요해요. 눈도 가만있지는 않겠지만 실은 눈보다도 내가 더 먼저에요.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입을 닫아도 뭐 별일 없잖아요? 그런데 코를 한번 막아보세요. 잠깐이라면 모르겠지만 한 몇 분만 지나보세요. 코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걸요? 그렇잖아요. 목숨이 걸린 문젠데그렇다. 코가 만일 작정하고서 파업을 한다면 우리는 코에게 당장 1번 자리를 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코는 거기다가 한 가지 역할을 더 해주고 있으니 참으로 기특하달까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냄새를 맡는 것이다. 이 기능은 사실 눈이나 귀나 입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좀 덜 중요할지도 모르겠지만, 문화적으로 보면 결코 그 의미가 만만치 않다. 라일락 아카시아 장미 기타 등등 저 축복과도 같은 향기들이 코 없이는 말짱 다 도루묵이다. 원천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구수한 된장국도 최고의 와인도 다 소용없다. 어쩌면 아기와 엄마의 관계, 연인과 연인의 관계도 체취와 코가 없으면 아마 좀 난감해지는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나는 향기의 문화적 철학적 의미를 논한 적이 있는데, 그 모든 것도 다 코와 더불어 비로소 가능해진다. 향수는 물론, 화장품 비누 향초 기타 등등을 생각해보라. 만일 코가 그 기능을 상실한다면 우리 인류의 산업의 한 축도 무너지게 된다.

코에게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저 개들이나 코끼리나 코뿔소를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만하면 코를 재인식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더욱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는 그 안의 코털들을 통해 드나드는 공기의 필터역할도 하고 있고 또한 점막을 통해 절묘하게 습기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70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이 코의 그런 역할이 없다면 당장에 수분을 상실하고 균형이 깨져 생명을 잃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고마운 노릇이 어디 있는가. 코는 우리의 숨은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이다.

몇 년 전 탈레반의 재판으로 황당하게 코가 잘리는 형에 처해진 아프간의 18세 여성 비비 아이샤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었다. 그것은 이른바 만행의 한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때도 사람들은 저 천인공노할 히데요시의 만행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일본 교토로 문화기행을 갔다가 이른바 미미즈카(耳塚)’(귀무덤)를 들렀다. 그런데 거기에는 실은 대부분 귀 아닌 코가 묻혀 있고 그 이름도 원래는 하나즈카(鼻塚)’(코무덤)였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너무 끔찍해 조금이라도 덜 잔혹해 보이는 것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동료들과 함께 묵념하면서 나는 그 억울한 코들을 위해 코의 철학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덤 속의 그 코들이 지금도 말해준다. 모든 것은 그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특히 가운데에 있는 것들은 반드시 그만큼의 의미가 있다. 그것을 훼손하는 것도 철학적으로는 악이요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또한 악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코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바다 건너 일본을 보고 있으면 왠지 내 코가 좀 근지러워지는 느낌이 든다. 성형외과의 수술 칼은 잘 모르겠지만 왠지 히데요시의 저 닛폰토(日本刀)’의 날카로운 쇠 냄새가 내 코에는 솔솔 풍겨오는 것 같다. 십만 양병을 외친 율곡의 상소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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