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여름
막바지 여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7.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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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더위가 푹 허리를 접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머리가 휑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그래서 더위를 참아 보려고 하지만 막바지 더위는 진짜 참을 수가 없다. 모기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서는 한방 물었다 하면 최소 일주일은 긁어야지, 샤워를 하고 돌아서면 또 땀이 나지, 속을 식혀주사 해서 찬것을 욕심껏 먹고 나면 배가 아파오지. 빌어먹을, 뭐든지 막바지가 견디기 어렵다. 퇴근 시간이 임박한 시간이면 시간이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로 늘어난다. 퇴근해봐야 별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졸갑증이 나든지.


청년 실업이 최악이고 자영업자들이 못살겠다고 난리고 폐업이 속출하는 이때에 나는 집을 하나 사게 되었다. 내가 알바를 하느라고 발발거리고 다니는데 우리 사무실에 이웃해 있는 부동산 사장이 뚱뚱한 배를 내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아줌마, 그렇게 일만 꽁꽁하지 말고 머리를 쓰으 머리를!!” 나는 덥기는 하고 속으론 머리를 나만큼만 쓰면 용할 걸, 했다. 그 사장은 평소에도 마주치면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하다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표정으로 이죽거리기를 이미 여러번이었다. “이 불갱기에 머언 집이래요?” “아, 이리 들어와 봐요. 급매로 싸게 나왔어, 싸게. 내가 아줌마 생각해서 아줌마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는 거야!” 그리고 또 한 번 머리를 쓰라며 재촉했다.

하기는 나야 어쩌면 좋은 소설을 쓸까, 주말에라도 시간을 내서 광화문 세월호 집회장에라도 참석할까, 이웃에 누가 불행한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인가, 뭐 이런 저런 돈 안 되는 데에나 머리를 쓸 줄 알지 돈 버는 머리는 젬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 저점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미 남편 앞으로 집이 한 채 있으니 그걸 담보로 융자를 내어 집을 사고, 월세를 내어 은행 이자를 갚으면 된다는 거였다. “잘 봐, 아줌마, 월세 받아서 은행이자 갚고도 남잖아? 그러니까 머리를 쓰라는 거지.”

어쨋든 머리를 써서 이 무더운 여름에 집을 샀다. 여름에 집을 사면 곤란하다는 걸 당장 체험했다. 월세를 살던 사람이 갑자기 운이 펴서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으니 보증금을 빼 달라는 게 아닌가. 팔자에 없는 집을 사느라고 있는 돈에 없는 돈까지 딸딸 긁어내놔서 통장 잔고가 바닥인데. 이미 이사철이 지나서 세를 놓자니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날짜도 임박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아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날은 왜 그렇게 더운지. 애믄 부동산 사장을 욕을 해댔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나의 세상엔 솟아날 궁리가 없었다.

그런데 새벽녁에 뭔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지들 용돈을 없는 셈치고 모아 놓은 걸 상기해냈다. 언젠가 만기가 됐으니 갱신을 하라고 해당 은행에서 해준 연락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두 아이들의 통장을 살펴봤더니 우째 저째 하면 맞춰질 것도 같았다. 세든 사람이 이사 가는 날이 불과 이틀 남았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급할 때마다 손을 벌리는 죽마고우에게 미리 전화를 해두었다. 여차하면 얼마를 보내라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봤더니 이자가 제법 붙었다. 집안에 돈이라는 돈은 긁어모았더니 50만원이 부족했다. 죽마고우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두 말도 않고 돈을 붙여주었다. 시간에 맞게 보증금을 돌려주어서 집주인 행세를 무사히 마쳤다. 문제는 이사를 나가고 이제 온전히 내 집이 된 집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반지하 집이라 여름엔 비교적 시원하고 겨울엔 또한 지상보다 훈훈하다. 마침 아들이 밀도있는 공부를 해야 하기에 아들을 당장 살게 하자면 청소를 해야 했다. 반지하 집이니 구석구석 곰팡이에다 묵은 먼지에다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이 불경기에 집을 사서 이렇게 청소를 하는 것이니 감사할 일이었다. 실제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디 별 탈 없이 집 산 통과의례를 마치기를 기원합니다, 운운. 청소를 하는 내내 혼자서 중얼중얼 기도를 했다. 청소를 마치고 나서 시간을 계산해봤더니 꼬박 여섯 시간을 청소를 했던 것이다. 몸살이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목이 부어 침도 삼키지 못하고 열이 나고 온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래도 기도 덕분이었던지 마침 일요일이라 먹고 자고 또 먹고 또 자며 푹 쉬었더니 저녁 무렵엔 거뜬해졌다. 비는 데는 몸살도 별 볼일 없는 거지. 몸살은 이겨냈는데 반지하에 몰려있던 모기에게 물린 데는 저녁 무렵니 되니까 붓고 가렵고 열나고...... 긁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진짜 모기는 왜 있지? 세상 모든 것들은 다 쓸모가 있다는데. 모기만 없어도 막바지 여름도 견딜만 할 텐데. 에휴, 모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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