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8.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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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8월의 더위 탓인지 머릿속이 멍한 채 도무지 정리가 되지를 않는다. 이럴 때는 한번 쯤 ‘논리정연함’이라는 학자적 의무감을 벗어나 삐뚤삐뚤 제멋대로 나는 나비의 날갯짓 같은 두서없는 글을 써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꽃을 찾아가 앉기만 한다면.


나는 10여년 간 외국 생활을 한 때문인지 ‘한국의 상태’에 대해 정말이지 관심이 많다. 그 핵심에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 내가 살아본 저 선진국들처럼, 아니 저 나라들보다 더 수준높은 선진국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 이건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나의 불치병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나의 감으로는 그게 참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주변에 선진국으로 가는 발걸음을 죽어라고 잡아당기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대오각성이든, 개과천선이든, 어쨌든 그 문제들을 넘어서지 않으면 선진국의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단언한다.

사람들마다 그 더듬이에 잡히는 문제는 각각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 몇 가지를 ‘투덜거림’이라는 형식으로, 단 ‘애국’이라는 입에 담아, 나열해보기로 한다.

우선, 사람들이 너무 찢어져 있다. 똘똘 뭉쳐 역량을 결집해도 저 문턱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데, ‘나’나 ‘우리 패거리’가 아니면 모조리 원수다. 동서, 남북, 좌우, 상하, 게다가 이젠 전후[즉 세대], 원근[수도권과 지방]까지 갈가리 찢어져 그 사이에는 살벌한 증오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이래 가지고서야 무엇 하나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다음, 낭비와 비효율이 너무 심하다. 일례로 엄청난 대졸 실업자. 저들이 지금까지 지불해온 교육비를 생각해보라. 세상에 이런 바보짓이 어디 있는가. 그 천문학적인 돈, 그 열정을 일찌감치 직업교육에 투자했더라면 진작에 선진국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학문세계에, 요즘 학회통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에서 소위 ‘평가’와 ‘지원’을 빌미로 가하는 압력 때문이다. 나의 경험상, 학회는 자생적으로 자라온 소규모 전문학회가 가장 효율적이다. 대규모 학회는 지금까지의 형태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조화롭게 양립해왔는데 왜 굳이 소규모 전문학회를 죽이려 하는지, 그 관료적 발상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 하나둘이 아니다.

다음, 언어의 저질화다. 청소년들의 욕설이나 소위 SNS를 떠다니는 ‘아무래도 좋은’ 혹은 ‘무책임한’ 혹은 ‘가시 돋친’ 언어들…. 이른바 교양이나 지성을 담은 언어들, 특히 품격있는 인문학적 언어들은 거의 빈사상태에 있다. 거기에 결정타를 가하는 것이 저 방송사의 드라마들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방송이란 이 시대 문화권력의 정점에 있다. 그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담당피디와 작가들조차도 망각하고 있는 모양새다. 시청률, 광고수익, 그런 것 때문인가? 그런 걸 감안한다 치더라도 요즘 전파를 타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지경이다. 어떨 때는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어떻게 저런 저질 언어, 저질 내용, 저질 설정들이 버젓이 저녁의 황금시간대에 방영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철학자로서 수도 없이 강조해온 대로 언어는 영혼의 구성요소다. 정신의 대기다. 주변에 떠다니는 언어들을 알게 모르게 호흡하면서 우리의 영혼, 정신이 그 언어에 물드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있는 방송사들이 저런 싸구려 저질 언어들을 마구잡이로 세상에 퍼트리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라는 3대 교육채널이 모조리 망가졌다고 한탄들을 하는데, 사회교육의 핵심에 있는 방송이 이 지경이면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한류드라마의 영광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런 훌륭한 작품을 만든 저 거장들은 지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다음, 미학의 부재. 건물, 교량, 자동차 등등을 비롯해서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을 디자인이 너무나 빈약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서울 한강에서 배를 타고 여의도에서 반포까지만 가봐도 안다. 이 아름다운 강변에 관광객들의 찬탄을 불러올 만한 건물과 교량이 하나라도 있는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꾸몄다고 하는 여의도 한강공원과 샛강에 가보더라도 미학의 부재는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할뿐이다.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이것들이 그냥 한 불평불만분자의 투덜거림으로 끝나도 되는 걸까? 진정한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과연 헛된 것일까?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이런 칼럼을 통해 다만 한두 명이라도 공감하는 동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런 궁시렁 궁시렁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을 터. 왜냐고? 이것도 일종의 사회적 발언에는 틀림없는 거니까.

그런데, 하여간 덥다. 이놈의 더위도 지구 온난화 때문인가? 아마도 화석연료가 주범이겠지? 무공해 전기차나 수소차는 도대체 언제쯤 나오는 걸까? 어쨌거나 빨리 좋은 시대가 와야 할 텐데. 통일도 돼야 할 텐데. 투덜투덜, 궁시렁 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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