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에 피우는 삶의 향기-(20)
마음 밭에 피우는 삶의 향기-(20)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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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부/시인·수필가

행복을 연주하는 밤   

  
운명의 화살은 꿈을 이끌고
인연의 강을 건너
상기된 선남선녀 비추고 있는
벽 거울 속에
영상의 그림자로 박힌다
 
그 속엔 꽃바람 휘돌고
가까운 것과 먼 것이 엉켜
익숙함과 서툴음이 교차하며
오랫동안 남남인 두 사람
먼 미지의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서로가 감정의 그림자
육신의 표면에 화장을 하고
숨겨진 내면의 노래를 부르며
인생의 희망을 비출
달디 단 행복을 연주를 한다. 
 
종합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전 인류가 지구촌 가족이라는 자각에 서서 하나의 세계가 실현되었을 때,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어 아연해질 것임에 틀림없다. 경계(境界)를 만들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이 지구상에 과거 인간은 용케도 요령 좋게 국경선을 긋고, 게다가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 대단한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다. 아직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의 틀을 이루고 있는 각종 기구나 정당법 및 행정, 지방자취 법률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사실을 전체의 진실로 가장하는 것은 그것이 극히 그럴듯한 것이기 때문에 권력자나 위정자들이 서민들을 기만하기 위해 취하는 상투수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명한 서민대중들은 그것을 간파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 반대적인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할 여유와 관찰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인간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선인이나 악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마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내부에 숨겨져 있는 진실에 얼마만큼 육박할 수 있는가는 우리 인간의 영지의 발로에 의하는 지혜일 수 밖에 없다.
 
각각의 사실은 그 범위 내에서 진실이라 해도 전체로써 보았을 때 진실과 전혀 반대인 경우도 많다. 어떤 사실만으로는 진실을 포착할 수 없다. 얼굴로 웃고 마음으로는 우는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실은 진실이 아닌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인간의 심리란 참으로 흥미롭다. 아무리 우수한 것일지라도 자기에게서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에게 직접 관련이 있는 것에는 만사를 접어두고 애착을 느껴 뛰어들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대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화와 융합에 도달하기 위한 대립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데 조화나 대립이라는 사고(思考)는 대립과 같은 차원의 것이 여서는 단순한 타협으로 되어버린다. ‘대립’을 초월한 보다 깊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조화’와 ‘융합’이야말로 ‘대립’의 가치를 마음껏 높이면서 또한 결실 있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과 사실을 아주 정성스럽게 연관시켜 종합적인 안목으로 진실을 추구해 가는 노력이, 특히 오늘날 같이 갈등과 대립이 범람하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여러 가지 대립과 집단행동, 갈등과 증오도 각각의 사실을 가지고 당장 전체의 진실로 보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위(眞僞)의 준별(峻別)과 선악의 판단이 타협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애매하게 감싸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개 서민대중이 살아갈 때 약간의 애매함은 겸허한 자세로 지켜본 다음에 인생의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받아들여 앞으로의 삶을 더욱 풍부하고 향기로운 맛을 담아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선과 악은 결코 이차원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선도 악도 포함한 복합적 존재가 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실한 모습을 흐림 없는 영지의 거울로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선인이었던 자가 돌변해서 악인으로 변해 간다거나, 선을 추구하는 것 같으면서 실제는 사람들에게 위선을 강요하는 그러한 일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요는 선악 어느 쪽으로라도 나타날 수 있는 ‘에고’를 어떻게 살려 이끌어 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악에 통하는 ‘에고’ 그 자체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이외는 없다. 또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의 모습을 예리하게 잘 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문명의 막힘으로부터 인간의 관심이 인간 존재의 내부 깊숙이 있는 ‘에고’라는 것에 집중하여 해결책을 탐구하는 과정에는, 세상을 종합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해답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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