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빈씨 항일투사들
5명의 빈씨 항일투사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0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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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향토사학자

빈씨는 본래 중국에서 유래된 성씨라고 한다. 중국 주나라 경왕 때 대부벼슬을 지낸 빈골주가 있었고 노나라 때 빈모가(賓牟賈)라는 공자의 제자가 있었다. 달성(대구)빈씨 시조 빈우광(賓于光)은 빈모가의 후예로 판도판서 이실의 딸과 혼인하고 자손이 번창하게 된다.


빈우광의 호는 송헌이며 송나라 학림학사를 지내다가 송이 망하자 서적 1만7천여 권을 수레에 싣고 고려로 망명해 오니 이 소식을 들은 충숙왕이 감탄해 수성군으로 봉하였다.

달성. 대구. 수성은 같은 지역으로 혼용되어 오다가 종친회에서 정한 규약정관에 의하면 대구 빈씨 달성공파 종중이라 하여 대구. 달성, 수성이 같은 일족임을 밝혔다.

1985년 통계조사에서 2647명이었고 최근 조사에서는 약 5천명 이다. 한글로 쓰면 발음이 같고 글자가 다른 빈(彬)가 있는데 역시 중국 성씨로 청나라 덕종 때 몽고 사람으로 원외랑을 지낸 빈문(彬文)이 있다.

빈씨들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항일투쟁에 가담한 분들이 많은데 빈광국선생은 중국 상해로 건너가 1924년 11월 김상덕. 윤자영. 엄항섭. 현정건. 곽상훈 등과 함께 상해청년동맹회에 가담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빈상철 선생은 국내와 국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1942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분이다.

빈영섭(賓永燮)(1887~1936년)선생은 전북 장수군 4개면에 독립선언서를 붙이는 3.1운동을 전개하고 도주했다가 6개월 만에 자수해 6개월간 옥고를 치른 공적으로 199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 분이다.

빈영홍(1876~미상) 선생은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서 1919년 4월 2일 독립만세 시위에 앞장 서서 투쟁하다 체포되어 태형 90도를 맞고 혼절했다. 2009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빈태문(賓泰紋)(1906~1973년)선생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빈영호 전 경상대학교 총장의 숙부로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진주청년동맹. 신간회 진주지회 상무간사 등을 역임하고 사회주의 계열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경에 잡혀 서대문감옥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른 공적이 있어 필자가 협력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분이다.
빈씨 후손들이 진주. 고성. 전북 장수군, 경북 예천. 대구. 부산 등이 살고 빈영호 경상대학교 제 4대 총장은 진주시 신안동에 거주하고 또 다른 빈영호 고성군 도시과장은 고성 공룡세계엑스포 사무국장을 약 10년간 재직중이다.

5천명 인구에 5명의 항일투사를 배출해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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