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품격
시간의 품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13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얼마 전 보스턴의 하버드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을 때 몇 차롄가 부름을 받고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그곳 교민들을 대상으로 [시간의 품격]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두어 시간 이야기를 했다. 제대로 된 한국어가 그리울 그분들에게 ‘품격 있는 인문학적 한국어’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다. 그런 정성이 통했던지 청중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들어주었고, 현지의 교민신문은 ‘감동을 자아냈다’는 고마운 말로 호평해주기도 했었다. 그날 내린 엄청난 함박눈과 더불어 내게는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 되었었다.


‘시간의 품격’이라는 주제는 사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다룬 적이 있는 나의 단골메뉴이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내가 전공한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내 철학적 관심의 한 축에다 두고 있다. 애당초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시간과 함께 시작되어 시간과 함께 진행되다가 시간과 함께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생각과 시계 안에만 존재하는 막연한 추상체가 아니라 삶의 온갖 사건들, 지극히 구체적인 내용들로 채워지는 엄연한 실질적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과거라고 부르는 시간은 ‘...했던 시간’이고,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은 ‘...하는 시간’이며, 미래라고 부르는 시간은 ‘...할 시간’으로, 반드시 무언가 그 내용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조차도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무언가를 하는 그때그때, 그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 말고 ‘인생’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수는 절대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그때 매일매일 주어지는 그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농땡이 치는 것도 다 그 시간의 내용들이고,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다 시간의 내용들이다. 철학에서는 그 모든 것을 다 ‘행위’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행위라는 것에 ‘질’이 있고 ‘격’이 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옳은 행위 그른 행위, 좋은 짓 나쁜 짓, 선행 악행, 그런 것이 엄연히 있다는 말이다. 이 행위들의 질과 격,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 그 행위를 하는 우리 자신의 ‘격’ 내지 ‘품격’인 것이다. 우리 자신의 그 격 내지 품격이 행위의 질을 결정하고 그 행위의 질이 시간의 질을 결정하고 그 시간의 질이 우리에 인생의 질을 결정하고 그리고 그 인생의 질이 사회의 질, 국가의 질, 세상의 질을 결정한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행위를 할 것인지, 즉 ‘무엇으로’ 그 시간들을 채울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서 전개되는 행위의 파노라마를 보면 그야말로 천태만상,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난다. 극악의 단계부터 지선의 단계까지 다채롭기가 이를 데 없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른바 ‘봉사’라는 행위로 자신의 삶을 채우는 분들도 적지 않게 있다. 나는 그런 분들의 그런 시간을 눈여겨 바라본다.

서울로 가는 KTX에서 우연히 인자한 얼굴의 노신사 한분이 옆자리에 앉았다. 가볍게 건넨 대화가 서울까지 이어졌다. 그분은 평생 은행의 간부로 일하시다가 뜻한 바 있어 그 일을 접고 아프리카로 날아가 그곳에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노라 했다. 사재를 털고 유관기관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미래의 동량으로 키워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런 분을 만나기는 드문 일이다. 보스턴에서 잠시 만났던 한비야 씨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감동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말이 그렇지 그런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분은 그런 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1년도 짧다고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런 시간, 그런 것이 품격 있는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어떤가. 삶의 원료라고도 할 시간을 무반성적으로 허비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어떤 이는 그 소중한 시간을 부정과 비리로 채우기도 한다. 부당한 증오와 싸움으로 채우기도 한다. 아까운 노릇이다. 인간의 시간, 삶의 시간은 양적인 존재라 무한하지 않다. 많아봤자 100년이다.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매일 하루씩 소비되면서 언젠가는 그 끝을 드러낸다. 그러니 한번쯤은 지나가는 그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 시간의 냄새를 맡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향기가 나는지 악취를 풍기는지.

잊지 말자. 오늘 하루의 시간에도 품격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