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의 불행
세대의 불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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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호주에 있는 스프링베일(Springvale)탄광은 지하를 달리는 특수 차량을 타고 미로처럼 어두운 지하 갱도(坑道)를 20분 정도 들어가면 채굴 입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다시 20분 정도를 걷거나 엎드려서 들어가면 석탄을 캐어 내는 막장이 나온다. 채굴 현장에서는 광부들이 큰 장비를 들고 요란한 소음을 내며 석탄을 캐내고 있다. 이곳 광부들의 일은 더럽고(dirty) 위험하며(dangerous) 힘든(difficult), 이른바 3D 업종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호주의 많은 젊은이들이 앞을 다투어 광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들 젊은이들이 한국과 달리 3D업종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1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서호주 지역 지하광산에서 일하는 제임스 디니슨(James Dinnison)이라는 광부를 소개했다. 그는 8000만 원짜리 셰비(Chevy) 픽업트럭과 주문 제작한 5000만 원짜리 고가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중퇴 후 곧장 광부 일을 시작해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 해에 무려 2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억 3000만 원이나 되는 고소득을 올린다. 호주 광부들의 평균 연봉은 약 1억 2000만 원 정도로, 이는 호주 전체 근로자 평균 연봉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처럼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광부는 3D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꿈의 직업’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소에서 선박을 용접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용접을 하면 봄이나 가을에도 땀을 비 오듯이 흘려야 한다. 하지만 4∼5년 정도 경력이 쌓이면 한 달에 300∼500만 원에 이르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용접 훈련 과정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남들이 잠든 새벽에 골목을 누비며 냄새나는 쓰레기를 치우는 대표적인 3D 업종이었던 환경미화원도 최근 10년 사이 엄청난 경쟁률을 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채용시험에 15대 1 수준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있다. 초임 연봉이 3000만 원을 훨씬 웃도는데다가 공무원과 동일하게 만 60세 정년까지 보장해주니, 경제난에 취업난까지 더해지면서 대학 졸업하고도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젊은 세대들에겐 평생직장을 꿈꿀 수 있는 직업이 된 것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다. 그들이 기피하는 것은 단순히 힘들고 더러운 3D 업종이 아니라 저임금에 시달리며 더 나은 삶을 꿈꿀 수도 없을 정도로 불안한 비정규직이다. 호주에서는 광부뿐만 아니라 3D 업종 근로자들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사무직 근로자들보다 훨씬 높다. 즉 남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의 임금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토익과 같은 보편적 능력이 아니라, 특정 업무에 특화된 숙련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청년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 전체의 생산성도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은 기피하고 편하고 폼 나는 일만 선호한다며 청년실업을 모두 ‘나약한 청년’들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년들이 3D 직종을 택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일이 힘들고 고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3D 직업으로 인생을 시작하면 사무직의 절반 수준인 낮은 임금을 받으며 평생 비정규직으로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청년들에게 3D 직종을 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국 젊었을 때부터 꿈과 희망을 버리고 살아가라며 등을 떠미는 것과 같다.

U 세대(Generation U). 즉 불행하고(Unfortunate), 운이 없고(Unlucky), 직장이 없는(Unemployed)세대라고 한다. 2015년 현재 100만 실업자와 600만 비정규직 청년의 불운은 국가의 불운이다. 자신의 죽음을 썩어가는 시체 냄새로 알리는 ‘무연사(無緣死)’는 독신으로 살아가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소식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년층이 아닌 현재 혼자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다.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연명하면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지금의 청년들이 노인이 된다면 훗날 무연사망자의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이 더 큰 꿈을 갖고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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