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화순 적벽경승지
전남화순 적벽경승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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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화순적벽(和順赤壁)은 동북호 호숫가에 거대한 전탑(塼塔)이 무리지어 치솟아 있는 경승지이다. 중국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혀졌고 조선10경(景)중 하나로 예로 부터 널리 알려진 절경(絶景)이지만 2014년 여름까지만 해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나 동북호가 광주 무등산 너머 광주 사람들의 먹는 수원지가 된 뒤부터 출입을 금지시켜 온 것이다. 그런데 2014년 10월 광주광역시에서 적벽의 풍광을 화순군에 돌려주었다. 오염을 막느라 일부분만 개방했지만 무려 30년 만에 이루어진 경사였다. 화순군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곳에 갈려면 아무 때나 적벽에 갈 수는 없다. 개방하는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사전에 신청해서 출입에 허가를 얻어 덜어가야 한다. 관광객을 위하여 버스가 운행하는데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에서 출발 화순적벽 중에서 가장 웅장한 노루목적벽을 볼수 있는 망향정 아래에서 정차한다.


30년전 동북댐이 만들어지면서 적벽 주변 17개 마을이 물속에 잠겼고 587가구 2,654명이 고향을 떠났다. 동북호 주변에 있는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장항적벽 등 4개 적벽중에서 가장 웅장한 옹성산의 노루목적벽을 보니 수몰의 아픔을 극복하고 있는 것 같은 힘과 기운이 느껴진다. 이주한 농부들의 한이 우리민족이 보였듯 극복 의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무명의 바위 절벽을 적벽이라 이름짓고 세상에 알린 사람은 조선 중종때 기묘사화에 연루돼 동북으로 유배온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 1483-1536 사인 동복(同福)에 유배) 문장에 뛰어나 호남3걸로 알려졌다. 최산두는 유배 생활의 어려움을 적벽강변을 산책하며 달랬다. 중국에는 적벽이 두 군데 있다. 양자강의 호북성에 있는데 하나는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을 치렸던 적벽시에 또 하나는 소동파(蘇東坡)가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곳으로 황강산에 있다. 중국인들은 삼국지의 적벽을 “무(武)적벽” 황강산의 적벽을 “문(文)적벽”이라고 부른다.

최산두는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고향인 광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복에서 생을 마감했다. 방랑객 김삿갓 역시 적벽 부근으로 내려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은 젊은 날에 창랑 적벽이 마주 보이는 물염정(勿染亭)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다. “물염정은 동북현에 있다. 정유년 가을에 아버지가 화순 현감으로 계셨는데 적벽은 40리쯤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 가서 노닐었다. 적벽은 울퉁불퉁 모양이 기묘하고 빼어났다. 바위 높이는 수십길이고 너비는 수백보나 되었으며 빛깔은 담홍색 도끼로 깎아 세운듯 우뚝하였다.” 소동파의 적벽부는 그곳에 경치를 글로 나타내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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