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예술로 진주남강유등축제에 의미 더했다
서예예술로 진주남강유등축제에 의미 더했다
  • 김상목기자
  • 승인 2015.10.13 13:08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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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설원 김장호 <진주문화예술재단 이사>

 
올해 첫 유료화로 개최된 진주남강유등축제 성공을 위해 진주 예술인들이 뭉쳤다. 그 중 서예 분야에서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이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성산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등 대한민국 최고의 서예가인 설원 김장호 선생이 직접 참여했다. 김 선생은 ‘진주의 혼(魂)’ 등(燈)과 충무공 김시민 장군등 좌대, 발전을 기원하는 장승등, 삼강오륜등(진주성 내 박물관 앞), 고뇌하는 명량의 이순신등에 자신의 글로 표현했다. 유등축제가 시작된 2000년부터 제문을 쓰고 봉사를 하고 계신 김장호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다음은 서예가 김장호 선생과의 일문일답.

-처음 서예 시작하시게 된 계기
▲어릴 적에 집안 어른들께서 시, 소설을 서예로 써놓은 작품들이 있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예비고사 후 비봉로를 갔다가 은초 정명수 선생의 누각의 문을 열었는데 풍겨나오는 묵향과 현판에 들어가는 큰 글씨를 쓰는 커다란 붓에 매료됐다. 다음날부터 선생 밑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입학 후 백우회(白友會)라는 서예동아리 활동을 했다. 학과공부보다 서예 쪽으로 빠져들어 자연스럽게 내 길이 됐다. 1984년 졸업 후 1989년에 서울 소헌 정도준 선생께 공부하러 올라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국제전을 제일 많이 해오며 세계에 서예를 알리고 있으며 진주성 공북문 현판, 남대문 상양문을 썼고, 이분 아버지 유당 정현복 선생이 촉석루 현판 주련을 쓰신 분이다.

-서예를 해오신지 얼마나 되셨나
▲35년이 됐다.

▲ 서예가 김장호씨가 유등축제 장승등에 발전을 기원하는 글을 써넣고 있다.
-유등축제의 유등에 글을 쓰는 역할을 언제부터 해오셨나
▲2000년 제1회 유등축제 때부터 지금까지 고유제문을 계속 써오고 있다.
1998년 한국미술협회 진주지부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개천예술제 제문을 쓰다가 2001년부터 유등축제 제문도 계속 쓰게 됐다. 유등축제에 야외에 설치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에 상여 등을 걸었는데 진주를 알리는 시를 조기에 적었다.

-올해 축제에서는 어떤 유등에 글을 쓰셨나
▲올해 유등축제가 유료화 돼 새로운 볼거리를 내놓으면서 ‘진주의 혼(魂)’ 등(燈)과 충무공 김시민 장군등 좌대, 발전을 기원하는 장승등, 삼강오륜등(진주성 내 박물관 앞), 고뇌하는 명량의 이순신등에 글을 썼다.

▲ 설원서예연구실 문하생들과 함께 서예를 하고 있다.
-유등에 글을 쓸 때 어려운 점이 있었나
▲유등이 완성돼 서있는 상태에서 글씨를 쓰다보니 먹물이 흘러내릴 수가 있어서 그런 부분을 조심해야 했고 서예가로써 작품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유등을 완성하기 전 원단에 글을 먼저 써서 제작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면 뼈대에 맞춰 천을 늘이다보면 글씨가 변형되기 때문에 완성한 상태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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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민으로서 축제 보탬되고자
제1회 유등축제때부터 제문쓰기
유등에 글쓰기·무료가훈 등 참여

청소년기 현판글씨·묵향에 빠져
현재 35년째 서예가로 활동 중
서예문화 많은 관심 가져줬으면

앞으로 2017년 개인전 열 예정

훌륭한 서체에 의미 더하는 예술
사람들 기억에 남는 작품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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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 속의 유등행사 시절
▲원래 개천예술제에서 남녀학생 제등행렬이 유등을 띄우는 행사가 있었는데 2000년부터 유등축제로 특성화시켜 생기자마다 우수축제로 커 올라왔다.

-1990년대 진주 미협 사무국장으로 있을 당시 개천예술제에 대해
▲문화예술경연의 효시인 개천예술제는 90년대 당시 미술실기대회 참가생이 만명이 넘었다. 개천예술제가 수상이 대학입시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진주시내학교는 한 학급당 5명 이내로 참가인원을 제한할 정도로 전국에서 오는 참가자가 많았다. 70년대는 전국에 공모전이 많이 없어 개천예술제가 인지도가 높았다. 일반부 경연에 전국적으로 쟁쟁한 분들이 와서 심사를 했다. 당시에는 박정희 대통령상이 나오는 국가적인 대회였다.

-무료가훈 써주기 행사란
▲작년에 유등축제를 찾아온 관람객들이 관람 후 가져가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료 가훈써주기’를 진행했다. 원래는 혼자 하루2시간 봉사하기로 했는데 축제 셋째날인 10월 3일 연휴가 맞물려 관람객이 매우 많이 와서 재단 자문위원 박동신 선생님께서 낮에 하시고 제가 교대하기로 했다. 제가 오후 6시 반부터 했는데 관람객이 너무 많이 몰려서 허리를 펼 틈도 없이 글을 써주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10시 반이었다. 그렇게 이틀을 하고 나니 몸살이 났다. 올해도 하려고 했는데 유료화되다 보니 혹시 말썽의 소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 않았다. 재작년에는 개천예술제 미술체험장에서 가훈써주기를 했는데 가훈을 부탁하러 매일 오시는 분도 있고, 마산에서 가훈을 써준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오신 분도 있었다.

-유등축제 소망등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2001년부터 유등축제에 소망등달기가 시작됐다. ‘소망등’을 보면 사는 곳 무슨 동과 이름이 적혀있는데 지금은 인쇄해서 제작하지만 2010년까지는 그걸 매직펜으로 썼다. 당시 매년 2만개 정도의 등을 우리 연구실 문하생 7~8명과 함께 축제 직전까지 일주일 동안 썼다. 그 일주일 간 서실에 먹향이 아니라 매직펜 향이 가득했다. (웃음)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다.

▲ 김장호 선생이 서예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유등축제를 위해 봉사해 오셨는데 언제 보람을 느끼시나
▲진주시민이니까 축제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외지에 있는 분들이 유등축제를 보고 감탄하고 칭찬할 때 보람을 느낀다.

-설원서예연구실 문하생 분들이 얼마나 계시나
▲가슴 아프지만 전통문화가 소멸돼 가고 있어 특히 서예쪽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90년대에만 해도 서예를 하는 인구가 많았는데 IMF를 거치면서 전통예술 쪽이 감소한 것 같다. 지금 서예연구실에서 글을 쓰시는 분은 20분 정도 있는데 예전에 비하면 적은 수다. 문하생 분들이 개천미술대전에 매년 40점 정도 서예작품을 출품한다.

-출강은 어디에서 하시나
▲진양도서관, 천전동사무소에서 강의하고 있다.

-유등축제 유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매년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하고 생각해야  한다. 관람객분들도 유등축제장을 찾았을 때 작년에 비해 이렇게 바뀌었고 즐기는 재미가 생긴다. 유료화는 발전의 계기가 되고 원동력이 된다.

▲ 작품활동 모습,
-선생님 고향은 어디신가
▲진주 금곡이다.

-가족사진이 단란해 보인다.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 큰 아들이 내년에 고3이 되는데 기대되는 것이 많은데 원하는 대학을 가 장래희망을 펼쳤으면 좋겠다. 중2인 둘째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K-POP스타를 좋아한다. 아직 어리니까 기다려야지 싶다. 아내가 9월 초 임상심리상담소를 열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회에 공헌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심리상담 역시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앞으로 하시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개인전을 2017년 정도에 열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을 하고 싶다. 김상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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