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유아자오적야(諂諛我者吾賊也)
첨유아자오적야(諂諛我者吾賊也)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19 16:5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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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내게 아첨하는 자는 나의 도적이다.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의 유가(儒家) 사상가이자 학자인 순자가 지은 사상서 ‘순자(荀子)’에 나오는 말이다. 첨유(諂諛)란 아첨(阿諂)한다는 의미로 이 말은 특히 조직의 리더가 경계해야 할 말이다.


옛날 한(漢)나라에 적공(翟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정위(廷尉)라는 요직에 앉아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마치 시장과도 같았는데 사임을 하자 대문 앞에 참새가 둥지를 틀 만큼 쇠락하였다. 그러나 다시 복직이 되자 또다시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변하는 마음을 깨닫게 된 적공은 다음의 문구를 대문 앞에 큼직하게 써 붙였다고 한다. ‘인간의 교제는 생사·빈부·귀천에 따라 변한다. 즉, 그 사람이 살아서 돈도 많고 높은 지위에 있을 때는 사귀려고 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죽으면 그 뿐이다. 몰락해서 돈도 지위도 잃으면 이와 더불어 사람의 발길도 끊어진다’ 쓸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태양의 찬란한 빛을 기분 좋게 쬐어 본 사람만이 그 몰락의 쓰라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얄팍한 마음을 꼬집은 말이다. 적공의 한탄은 어느 시대를 보아도 변함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자 앞에 서면 숨을 죽이게 되고, 권력자의 뜻을 거스르기가 힘들어진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한편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첨하며 달라붙는 부하가 아무래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데 그러다 정신을 차려 보면 주위에는 온통 아첨배로 득실거린다. 이러한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현대의 최고 경영자 주위에도 아첨하는 무리 일색인 경우가 많은데 인정에 끌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왜 이것이 나쁠까?

첫째, 주위에 아첨하는 무리들 일색이 되면 리더에게는 듣기 좋은 정보만 들어온다. 그 결과는 정보가 차단되어 주변 정세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판단을 그르치기 쉬우며, 또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듣기 좋은 말에 현혹되어 조직과 괴리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역효과는 조직이 클수록 심각하다.

둘째, 아첨만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족에 빠져 발전이 없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나면 좋은데 때때로 자만심에 빠져 사람을 깔보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돌이키기 힘들 지경에 이르게 된다. 순자가 “나의 도적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한편 아첨을 하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 손실이 더 큰데 어찌됐든 ‘첨유’하는 사람이 득실거리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순자는 또 이렇게 경고했다. “나를 거스르며 싸우는 자는 나의 스승이다”라고 했다. 나의 결점과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은 누구라도 나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교훈을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실천하려고 하면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쓴 소리의 말을 듣고도 기뻐하기란 여간해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유교의 경전인 ‘역경(易經)’에 보면 소징이대계(小懲而大誡)라는 말이 나온다. 작은 잘못에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벌을 주어 두 번 다시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경고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기껏해야 3년에서 5년 정도의 징역형에 처할 정도의 죄에 대해서도 사형을 시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총살에 필요한 탄약 값마저 죄인의 유족에게 청구한다고 한다. 상당히 가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역경’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 하겠다.

지금 각종개혁이란 단어가 귀가 따갑도록 들려오고 있는데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인들에게 이런 부분이 결여되어 있으면 국민의 솔직한 의견을 듣기가 어려워진다.

부하가 상사를 이해하는 데는 3일이 걸리지만, 상사가 부하를 이해하려면 3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중국 명나라 때 저명한 사상가인 여곤(呂坤)이 쓴 ‘신음어(呻吟語)’에 보면 당시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데 여기에 “유상즉유농고 기옹폐자중야(愈上則愈聾瞽 其壅敝者衆也):위로 갈수록 눈, 귀가 멀고 그것을 막는 자들이 많아진다”고 했다. 국회의원님들 이제 3년을 했으니 민의를 알만 도 한데 내 속의 아첨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시지 말고 ‘소징이대계’와 ‘첨유아자오적야’를 좀 명심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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