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샘 받는 인생, 멋진 인생!
시샘 받는 인생, 멋진 인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1.10 17:42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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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사람이 질투를 하면 독사가 된다고 했다. 그만큼 독하다. 질투를 한번쯤 받아본 사람이라면 질투하면 사람이 아예 독사가 되어 버린다는 말이 얼마나 절묘하게 들어맞는 건지 이해가 된다. 우선 질투하는 사람의 눈을 보면 아주 집요하다. 그 눈이 보는 시각 또한 오직 한 쪽으로만 파고든다는 걸 알 수 있다. 질투라고 해서 꼭 남녀 사이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질투가 남녀의 애정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감정의 작용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나같이 늙어가는 사람이야 연애만 안 하면 질투에서는 해방될 텐데.


질투는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다. 그러니 질투는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무시로 일어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어느 탄탄한 정보 회사에 입사해서 거의 20년을 일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전무로 몇 년 간 근무하는 중에 사장이 사망하면서 사장 지명을 다른 사람이 했다. 일이 순리대로 풀리자면 전무가 사장이 되는 것이 좋았다. 이미 그 회사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으니까 그냥 책상 위에 명패만 바꾸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사장이 되었다.

이 새 사장이 일을 시작해보니 전무가 그 회사를 움직여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전무는 성격도 원만해서 아래 위 사람들과 친분도 다정했다. 그러나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 이 새 사장에겐 배알이 틀렸다. 시기와 질투와 불안이 밀물처럼 밀어닥쳤을 것이다. 왜 사장인 자기가 다 움직여가야 되는데 전무가 나대느냐는 거였겠지. 어느 틈에 전무가 자신을 깔아뭉개며 사장으로 올라가는 악몽을 꾸었겠지. 이에 어떻게 하면 전무를 내쫓을 수 있을까 고민에 돌입했겠다. 그렇게 집요하고 사악한 시샘이라면 자기가 죽든지 상대가 죽든지 해야 끝장난다.

새 사장은 몇 십 억 프로젝트를 사장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서 회사에 몇 십 억의 손해를 끼쳤다고 해서 민사 소송을 걸어버렸다. 전무는 제대로 뒤퉁수를 맞고서 줄초상이 났다. 우선 집안 식구들이 말을 들은 차례대로 기절을 했다. 평사원에서 출발해서 전무까지 되었을 때는 그 노력이 어땠을 것인가.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께도 유분수지. 당장 몇 십억을 주지 않으면 감옥을 가게 생겼다. 성실하게 일만 하느라 돈도 모아두지도 못했는데..... . 게다가 법마저 이 전무를 돕지 못했다. 부분 승소를 했다. 그래도 몇 십 억을 물어내야 하는 판이었다.

전무는 대법원에 항소를 했고 완전 승소를 했다. 민사 소송에서 승소를 하면 모든 재판 비용을 패소한 사람이 다 내야 된다. 그래서 이 전무는 그 돈을 돌려받아 그간에 진 빚을 다 갚았다. 그렇다고 집안 사람들의 상처까지 다 보상 받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도 성실한 사람은 살게 마련이다. 그런 모함을 정면 대결해서 재판에서 이기는 것도 커다란 실력이다. 살다가 직면하는 가장 큰 전쟁 중 하나를 이겼으니. 대기업체는 전무 같은 인재를 모를 리 없다. 전무는 제때 스카웃 되어 지금 또 다른 기업을 창업 중이다.

이 새 사장은 실형을 선고 받고 지금 감옥에 있다. 참 딱한 사람이다. 인생을 말아먹는 것도 가지가지다. 아니지, 인생을 말아먹는 마음의 갈래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탐욕, 질투! 딱 두 가지다. 게다가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간다. 이 새 사장도 ‘내가 저 전무를 따르는 사람들을 다 내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탐욕과 내가 사장인데 지가 왜 사장보다 더 존경을 받고 난리야’ 하는 질투심이 함께 작용해서 인생 말아먹은 경우다. 참으로 미욱하고 안쓰럽다. 살다가 이런 사람은 안 만나야 되는데.

안 만나고 싶다고 안 만나져야 말이지. 개구리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전무와 같이 큰 질투도 있지만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시기질투야 말로 사람을 피곤하게 하니 그게 더 문제다. 팡팡 믿었던 사람도 한 순간에 등을 돌리고 내 등 뒤에 칼을 꽂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안 살 수도 없다. 방법이 없을까? 아니면 시기 질투를 피할 방법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너도 나도 시기 질투를 딱 안 하면 된다. 그런데 잘 안 된다. 곰곰 생각해 봤다. 우선 남의 그것은 두고라도 내 속에서 작용하는 시기 질투를 잘 다스리고 찍어내고 눌러 힘을 못쓰게 하면 된다는 게 그것이다. 우리 각자 각자가 시기 질투를 안 하면 세상의 질투는 사라진다.

그리고 시샘을 자랑으로 삼으면 어떨까? 시샘씩이나 받는 멋진 내 인생, 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시기질투도 못 받는 시시한 인생이란 참으로 불쌍하다. 보라, 위대한 인생 곁에는 언제나 시샘하는 이인자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지 않은가! 참으로 징그럽지만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케다 다이사쿠라는 일본의 종교지도자가 말씀하셨다.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데는 내 편보다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나의 승리에 더 많이 기여한다”고 갈파했다.

시샘을 받을 땐 짜증나고 시샘을 하는 상대가 너무 밉다. 그럴 때 이렇게 외쳐보자. 시샘 받는 멋진 내 인생! 야, 너가 있어 내 멋진 인생이 증명되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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