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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신웅 칼럼
중국사회(中國社會)의 발전과정(Ⅱ)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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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15  18: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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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중국사회의 발전과정Ⅰ(씨족사회)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시간에는 중국사회의 발전과정Ⅱ(봉건제후세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은말에서 주대를 거쳐 춘추전국에 이르는 이 시대는 문명상으로 철기(鐵器)의 발명으로 능률 시대로 전입했고, 경제적으로 집단적인 축목 경영에서 농경시대로 전환했고, 상하의 계급이 형성되고, 토지의 봉급(封給)이 창시된 봉건제후 시대였다.

상(商)대는 아직도 씨족사회에서 봉건사회로 옮아가는 과도기(過渡期)로서 당시의 맹주(盟主)들이 서로 정벌(征伐)을 일삼았으니, 그 씨족들의 공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주(周)의 왕조는 각 부족 간의 충돌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토지왕유(土地王有)의 제도를 수립하여 튼튼한 상하(上下) 계통, 즉 인간과 인간의 예속관계를 분명히 해왔다.

전국을 통일한 주왕(周王)은 천자(天子)로 불리며 천자는 일부분의 토지를 왕기(王畿)로 분봉(分封)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땅을 공(公)·후(候)·백(伯)·자(子)·남(男) 등 제후에게 봉급했다. 제후들은 다시 일부분의 토지를 국기(國畿)로 분봉하고, 대부분의 땅을 제후에게 소속된 경대부(卿大夫)에게 채읍(采邑)으로 봉급했다. 경대부는 자기에게 소속된 토지를 다시 정전(井田) 혹은 조세(租稅)를 받으며 농민에게 나누어 경작케 했다.
이러한 상하 계통 속에서 농민들에게 근면한 경작을 장려했던 나머지 정부와 농민은 융화를 이루었고 생활도 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정부의 토지소유와 관장에 따라 국민의 계급은 현저히 형성되어, 민주주의를 이식하기까지 수천 년 동안 이른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차별을 불식할 수 없었다.
봉건제도로 볼 때, 크게 영주(領主)와 농노(農奴)로 나누어진다. 영주는 농노의 부역을 감독하고, 농노의 땅세를 증수하는 한편 농노들이 공납한 주육으로 향락하고 제사를 집행함으로써 농노의 신앙을 주도하고, 수렵(狩獵)으로 농노의 병역(兵役)을 검열하면서 무술을 길렀고, 나아가서는 전쟁을 일으켜 귀족들의 잉여인구를 처리했던 것이다.

이들이 독립된 장원(莊園)을 영위하는 기본 영주인 경대부다. 공(公)·후(候)들도 결국 이런 영주로서 대규모의 것들이며, 왕기를 책봉받은 천자는 결국 큰 영주에 불과했다.

그 반도가 작든 크든 장원(莊園) 계급에 속하는 영주들이 군자가 되고, 그 밑에서 경작을 맡은 농노와 공상(工商)에 종사하는 천민(賤民)은 소인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소인으로써 중간계층이 있다. 이는 자유농민이니, 자기 토지로써 생활하고 자기 무기로써 제후들에게 병역(兵役)을 복무해 주는 사(士)를 말한다.

‘주역(周易)’에 논급(論及)된 곳만도 대인(大人)이 11군데, 군자가 13군데, 소인(小人)이 4군데이다. 이를 직업과 연관시켜 귀납(歸納)하여 보면, 대인은 천자나 왕후(王侯), 군자는 무인(武人)이나 사무(史巫), 그리고 소인은 읍인(邑人)이나 나그네[行人] · 형인(刑人), 첩(妾)이나 종을 가리킨다.
여기서 대인군자(大人君子)는 지배계급이고, 소인형인(小人刑人)은 피지배계급임을 알 수 있다.
그중 다수를 점유하는 소인(읍인)은 곧 ‘시경(詩經)’ 중에 보이는 여민(黎民)이다. 그러나 ‘시경(詩經)’ 속의 여민은 거의 농민이다. 이 농민은 거의 소작과 부역(賦役)에 시달리면서, 오직 유전계급(有田戒急)인 제후와 경대부에게 예속된 것이다. 그들 농노는 소작과 부역 외에도 수렵 · 양잠 · 바느질 · 축목(畜牧) · 양주(釀酒)를 해서 영주들의 의식을 공급하고, 궁정에 들어가 역사(役事)에 동원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러는 이 농노들을 노예(奴隸)라고도 불렀고, 심지어 주(周)대를 통칭 노예제(奴隸制)라고 일컫기도 했다.

이러한 계급 형성은 약자나 소수를 넘어뜨리는 불균형 상태를 쉽사리 불러일으켰다.
큰 제후는 작은 제후의 토지를 병합함으로써 사유(私有)제를 조장했고, 농민은 증산(增産)을 위해 남의 경제를 침범하였고, 거기다가 제후들도 땅세의 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서로가 경제를 침범하여 토지 행정상 혼란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상공업의 발달로 천민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많은 제후는 자유농민인 사로 전락되어, 세력과 권위에 극렬한 변화가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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